나의 가을
나의 가을
척하면 삼척이요, 퍽하면 이웃집 지붕에서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는 말이 있지요.
내가 사는 빌라 3층 배란다에 화분을 놓고 호박이랑 고추 등을 키우고 있는데, 호박 넝쿨 하나가 지붕 아래로 내려 뻗어 호박을 맺기 시작하네요.
거실 문을 통하여 자라는 호박을 보면서 마누라는 애호박일 때 따서 요리해 먹자고 하나, 나는 은근히 익을 때까지 기다려 보고자 하는 마음에 그냥 두었습니다.
호박이 커 갈수록 호박 넝쿨이 호박을 지탱할 수 있을까 걱정도 하고, 바람이 불 때 눈 앞에서 호박이 흔들거리는 것을 더 지켜 볼 수없어 전번 일요일 아침에 호박을 지붕위로 올려 놓기로 마음먹고 지붕에 올라 갔어요.
호박이 달린 호박 넝쿨을 조심스럽게 잡아 걷어 올리는 순간 그만 호박 넝쿨이 끊어지면서 호박이 1층 빌라 마당으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정말 퍽 하더라고요.
호박이 떨어진 마당을 보니 바로 옆에 장독이 있었는데 장독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알고, 지붕에서 내려와 아침 운동을 하고 들어온 집사람에게 말하였드니 집사람이 용감하게 1층 빌라 마당으로 가서 호박을 주어오더라고요.
깨어진 호박을 식탁에 내벼려 두자 금이 간 부위에서 진물이 흘러내리더라고요.
집사람도 수일 전에 문경 새재 갔다가 빗길에 넘어져 으론 쪽 손목을 다쳐 호박을 처리를 하지 못하고 방치하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내가 저녁 먹고 호박을 보니 어릴 때 시골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이 익은 호박을 쓸어서 말려 두었다고 떡을 해먹을 때 사용한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호박의 껍질을 벗기고 쓸었는데 살이 이미 두툼하게 붙고 단내가 물씬 풍기더라고요.
우리 지붕에는 아직도 익어가는 호박이 여러개 달려 있어요.
예년 처럼 얼마전에 3째 눗님 농장이 있는 구리에 가서 잘 익은 호박 4개를 가져왔고, 내가 가꾼 호박까지 하여 두고 두고 호박 범벅을 해먹으려고 해요.
몇 주전에 전남 장성에서 부부동반한 대학 동창 모임이 있었는데 당시 애호박 2개가 경쟁하듯이 크다가 하나가 쳐지고 하나만 자라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그 호박이 들깨 나무에 의지하여 제법 살이 쪄 익기를 기다리고 있네요.
익은 고추도 따서 가을 햇볕에 말리고 있고, 아직 수확할 고추가 많이 있어요.
들깨 나무에도 꽃이 피고 지면서 씨를 맺으면 받으려고 기다렸으나 참새가 와서 여물기도 전에 거의 다 짜 먹고 빈 껍질만 남았네요.
봄, 여름, 가을 동안 들깨 잎만 따 먹은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시골에 있는 형님이 들깨 농사지어 매년 1말정도 올려 보내주니 들깨 기름은 걱정할 게 없어니까요.
동기 카페나 카톡을 보면 동기들이 연일 히말라야니, 미국이니, 유럽 등지를 여행하면서 멋진 사진이 올라 오곤 하지요.
하지만 나의 가을은 이렇게 가고 있네요.
2016. 10. 19.
하일도(이선호)
호박이 한줄기에서 2개가 맺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