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고천

하일도 2018. 11. 5. 16:41


    

                    鷓鴣天(자고천) - 황정견(黃庭堅)


黃菊枝頭生曉寒(황국지두생효한)

노란 국화꽃 가지 끝에 새벽 한기가 도니

 

人生莫放酒杯乾(인생막방주배건)

인생에서 술잔을 마르게 두지 말라.

 

風前橫笛斜吹雨(풍전횡적사취우)

비바람 속에 피리 불며

 

醉裡簪花倒著冠(취리잠화도착관)

취하여 머리에 꽃 꽂고, 모자 거꾸로 쓰네.

 

身健在且加餐(신건재차가찬)

몸 건강하여 마음껏 마시고

 

舞裙歌板盡情歡(무군가판진정환)

치마 입고 춤 치고 장단 맞춰 노래 부르며 흥을 다하네.

 

黃花白髮相牽挽(황화백발상견만)

백발에 국화꽃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付與時人冷眼看(부여시인냉안간)

세상 사람들이 시린 눈으로 보아도 괴이치 않으리.



*황산곡은 1095년 검주(黔州)로 좌천을 당했다

검주는 원래 꾸이저우 지방을 말한다는데

지금의 귀주 북쪽 사천성 동남쪽을 말한다

 


근처에 마오족이 많이 사는 펑수이(彭水)가 황산곡이 살았던 곳인데

오늘날 펑수이는 사천성에서 떨어져 나온 충칭 직할시 관할에 있다

중국은 땅이 넓어서 충칭시 권역이 남한보다 약간 작은 8만평방킬로이다

 


1098년 황산곡은 다시 융주(戎州 지금의 쓰촨 이빈시)로 밀려나는데

자고천은 융주에서 지은 노래다

 


융주에는 당시

쓰촨 미산 출신의 사주(史鑄)가 음풍농월을 하면서 은자로 살았는데

황산곡과 자주 어울려 시문을 화답했다

 


황산곡의 자고천에는 이백의 장진주

그리고 당나라 시인

서인(徐夤)의 시구

 

(냉안간정진호소冷眼看靜眞好笑)

의 이미지가 변형되어 실려 있다

 


자고천은

황산곡이 불우한 시절에 마음이 통하는 벗을 만나 자신의 울적한 심회를 읊은 노래다

 

황산곡의 시와 사가 어려운 점은 인용된 시구가 많아서

평소 많은 시를 접하지 않으면

원 뜻을 따라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