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언

하일도 2018. 11. 30. 15:57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1545년 3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의 침입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에서 수군을 이끌고 해전에 참가, 전 해전에서의 승리로 7년 간의 전란을 종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명장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전쟁기간 동안 왜선 700여척을 나포, 격침시키는, 세계 해전사상 길이 남을 전과를 거뒀는데요. 그런 전과 뿐만 아니라 길이 남을 명언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같이 한번 이순신 제독의 명언을 들어볼까요?

1. 장부출세 용즉효사이충 불용즉경야족의(丈夫出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입니다.
대장부로 세상에 나와 나라에서 써주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할 것이요. 써주지 않으면 야인이 되어 밭갈이하면서 살리라.
충무공이 1576년 무과에 합격하고 발령을 조용히 기다리며 한말입니다.


2. 이위차알해구 막여주사(以爲遮遏海寇 莫如舟師)입니다.
바다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는 데는 수군을 따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전 국방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데요. 이때 왜적은 수전에는 능하지만 육전에는 약하다. 그러니 육지 방비에 주력하고 수군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때 충무공이 했던 말입니다. 수군활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하였던 거죠.

3. 이 외에도 이순신 제독은 수군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였는데요.

아국소시 유재주사(我國所恃 唯在舟師)입니다.
우리나라가 믿을 것은 오직 수군뿐이다. 라는 뜻입니다.

4. 수륙구격 서가진섬(水陸俱擊 庶可盡殲)입니다.
수군과 육군이 함께 진격해야만 적을 섬멸할 수가 있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순신 제독은 육군과 수군이 함께 합동작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래서 이순신 제독은 육군 지휘관인 경상 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육지에서 적을 몰아 바다쪽으로 나오게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답니다. 이때 기록으로 남겼던 말이 수륙구격 서가진섬입니다.


5. 이순신 제독의 칼에는 명문이 새겨져있습니다.
아마도 항상 마음에 새기겠다는 이순신 제독의 신념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다음은 이순신 제독의 칼에 새겨져 있는 명구입니다.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인데요.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강산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라는 뜻입니다. 


6. 이순신 제독의 칼에 새겨진 또다른 명문이 있는데요.
바로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입니다.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라는 뜻이지요.


7.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입니다.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을 앞두고, 또 계속되는 육군의 패배소식으로 긴장하고 당황한 부하들에게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 훈시인데요.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8. 익려주즙 해구대변(益勵舟楫 海口待變)입니다.
이순신 제독은 항상 전쟁에 대비하는 자세를 볼 수가 있는데요.
배들을 더 한층 정비하여 바다 어귀에서 사변에 대비하라는 뜻입니다.


9.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입니다.
칠천량 해전의 패전 후에 조선 수군의 숫자는 120명, 전선은 12척이었습니다.
이에 조선 정부에서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전에 참전하려는 명을 내렸고,
이 때에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금신전선 상유십"이란 말을 하였는데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12척으로 조선 수군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답니다.


10.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입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의 적도 두렵게 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부가 길목을 막아도 천군이 두려워한다는 길목이 이곳 명랑이라며 명랑해전을 앞두고 한 말입니다.
 

11. 혼비혈류출승여 야좌사누 여하가언(昏鼻血流出升餘 夜座思淚 如何可言)입니다.
어둘 무렵이 되어 코피를 한 되 남짓이나 흘렸다. 밤에 앉아 생각하고 눈물 짓곤 하였다. 어찌 다 말하리.란 뜻입니다.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나서 아들 면의 부고를 받고 나서 쓴 일기입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을 느낄 수 가 있습니다.


12.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입니다.
이 말은 충무공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전라도로 진출하는 왜적을 막아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전투의지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훈시인데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적을 물리쳐 살아남을 수 있으나 적을 두려워하여 살고자 도망치면 적에게 패배를 당함은 물론 목숨도 잃게 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훈시를 듣고 용기백배한 조선수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혼을 발휘하여 불과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적을 물리쳐 전라도를 방어할 수 있었답니다.

13.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입니다.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1598년 11월 18일 적선이 노량으로 와서 정박하는 배들이 많았습니다. 충무공은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을 앞두고 자정에 천지신명께 비는 내용입니다.


14.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인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명언인데요.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아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려는 이순신 제독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