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음에 와 닫는 글이 있어 소개 합니다. 동아일보 오늘자 신문을 안 본 회원을 위하여
운명이라는 것은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을 철썩이고
종달새는 하루에 3000번씩을 우짖으며 자신을 지킵니다
용설란은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한 꽃대에 3000송이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습니다
벌은 1키로그람의 꿀을 얻기 위해
560만송이의 꽃을 찾아 다니고
낙타는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도 있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도 있습니다
운명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요
---시집"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천양희)중에서
파도는 제가 하루에 70만번이나 철썩이는 줄 모르고, 종달새는 제 울음 3000번을 세지 않으며, 용설란은 100년을 하루로 여길지도 모른다.
벌은 꿀무게를 저울에 달지 않으며, 낙타는 눈이 젖은 채로 즐겨 웃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는 삶의 의미를 '울음'에 두지 않으니 스스로 매인 운명을 알지 못한다.
조롱(鳥籠)속의 새가 새장을 인식하는 순간 갇히고, 새장을 인식하지 못하면 영원히 새장을 벗어 날 수 없으니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운명은 알지 못함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거늘 운명을 인식하는 것 또한 초월을 꿈꾸는 이만의 운명이니, 종일토록 문설주에 기대어 종달새 우짖는 소리 헤아리느라 외롭다. 반칠환시인
여기 보태어 장자이야기 좀 읊어 본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팽조는 팔백세을 살았으니 인간으로서 가장 장수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살이란 작은 벌레는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어니 그 벌레는 근본적으로 1개월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전혀 모른다.
그밖에 매미라는 벌레는 봄에 태어나서 여름에 죽어니 그는 본래 사계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초나라 남쪽 바다에 거대한 거북이가 한마리 살았는데 그에게 있어 오백년의 세월은 단지 한 철의 봄이거나 혹은 한 철의 가을에 불과할 뿐이다.
상고시대 춘(椿)이라는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팔천년이라는 기간이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봄이요,단지 가을이었다.
하루살이와 매미을 "짧은 생명"(小年)이라 부른다면 거북과 동백나무는 "긴 생명"(大年)이라 부를 수 있으며,이들은 서로의 생활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팽조의 삶을 거북과 동백나무에 비한다면 그 또한 아주 짧은 인생을 살았다 할 수 있다.
세인들은 팽조를 가장 장수했다고 여기나 이 또한 짧은 인생의 비애가 아니겠는가? |
저물지않는 하루는 없고 지지않는 태양도 없다.인간은 비켜갈 수 없는 리얼리즘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되풍이 하는것같다.저위에 높으신 양반들 좀 보고 느낀다면 깨끗한 삶을 살터인데.....
느끼는바 많지만 실천이 와이리도 안되는고? 선대의 현인들 가르침을 배우고 있다면 이리 힘든고행은 다같이 풀어갈수도 있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