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개는 만물의 척도
하일도
2023. 3. 30. 14:18
개는 만물의 척도(尺度)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지가 2,500여년이 지났다.
이것은 만물의 척도가 신이나 절대적 진리가 아닌 모순투성이의 인간으로 끌어내린 말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명제도 이제는 만물의 척도가 인간이 아닌 개로 바꾸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요사이 유행하는 말 중에 사람을 1)개보다 못한 놈, 2)개 같은 놈, 3)개보다 더한 놈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보면 사람보다 개가 더 정확한 판단의 잣대가 아닌가 한다.
최근에 전직 대통령과 개를 두고 말들이 많다.
개 버린 대통령이니 개를 이용하여 정치 장사 잘한 분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위 분류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은 1), 3)에 해당할 수 있지만, 그 분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가치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사이 개는 가축이 아닌 인간의 반려가 되었고, 더 나가 사람보다 더 귀한 존재가 되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야만인으로 비하되기도 하고, 개를 학대하거나 버리는 것이 \
부모를 학대하거나 유기한 것 이상으로 비난받는 세상이다.
세상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나쁜 주인이 시키는 대로 굴종하는 사람'을 일컬어
악명 높은 도둑 대왕 도척의 개라고 비난하는데, 개의 입장에서 보면 음식을 주고 자신을 돌보는 주인을 섬기는 것이
어찌 견공(犬公)의 미덕(美德)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사람으로서 주인을 무는 패륜아(悖倫兒)들이 득세하는 세상임에랴.
내가 좋아하는 극단적인 쾌락주의자이자 이기주의자인 양주(楊朱)의 동생 양포(楊布)가 집을 나갔다가 비가 오자
옷을 바꿔입고 들어오는 자신을 못알아 보고 물려고 하는 개를 때리려고 하자,
이를 본 양주가 양포에게 개를 때리지 마라, 개의 입장에서 충분히 주인을 물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고 하여
楊布之狗(양포지구)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나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 개는 때가 되면 팔려가거나 잡아먹히는 하나의 가축으로 알고 지냈다.
공부한다고 객지에 나와 자취할 때 주인집 개를 보고 저 개는 전생에 무슨 복업(福業)을 쌓아
사람인 나보다 더 존귀한 대접을 받는가 하면서 부러워 했다.
그 후 서울 수유리 개미골목에 있는 개인 주택에서 전세살 때 진도견 백구 숫놈 새끼를 키웠는데(바우),
이사할 때 잘 키우겠다고 바우를 넘겨받은 분이 불과 1시간이 되지 않아 그 자리에서 바우를 잡아 먹은 것을 알고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난 사람을 믿고 신뢰하고 싶다.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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