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팡이( 무념보살)

하일도 2023. 12. 15. 11:34

지팡이(무념보살)

 
갑자기 수종사 무념(無念) 보살이 보고싶다.
이른 점심을 먹고 가좌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1시간 20분정도 가면 운길산역에 도착하고, 거기서부터 운길산을 따라 1시간여 걸어가면 수종사가 나온다.
시간이 넉넉하면 운길산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수종사에 들리는데 요사이는 해가 짧아 수종사만 들리기로 했다.
운길산 초입에 이르니 큰 나무에 나무 지팡이가 세워져 있다.
참 고맙다고 생각하고 소나무 지팡이를 골라 짚고 오르니 앞에 제법 연치가 높은 어르신 부부가 스틱을 짚고 내려온다.
나를 보고 웃으면서 "도닦으로 갑니까?"라고 하여,
나는 "부처 만나러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서로 활짝 웃었다.
그 어르신은 내가 지팡이를 짚고 가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말했으리라.
사실 인생은 길 위에 놓여져 있으니 어쩌면 인생 자체가 길이 아니든가.
길이 끝나도 길은 이어지고, 사람이 환생한다면 끝없는 길을 가야하리라.
날씨는 겨울치고 기온이 높아 구름이 끼고 날이 흐려 두물머리의 깨끗한 전경을 볼 수 없다.
차라리 눈이 왔으면 설경을 보는 운치라도 있으려만.
보통 무념 보살은 저녁 공양이 끝나면 나타나기 때문에 오후 5시 이후가 되어야 볼 수 있다.
오늘은 4시 반경에 도착했으니 조금 기다릴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종무소에서 무념 보살이 바로 나타났다.
무척 반갑다.
보살도 나를 기다렸나?
내 주위를 돌아다녀도 나를 아는체 하지 않는다.
내가 본당에 들어가니 내가 벗어 놓은 신발에 냄새를 맡는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올해는 수종사에 여러차례 왔는데 올 때마다 보살을 만났다.
저녁 공양 전에 어디 있는 곳까지 알게 됐다.
무념 보살은 한결같다.
어느 누구도 보살의 표정을 볼 수 없다.
털이 온통 얼굴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구를 따르거나 애착하는 동작도 없고 짖지도 않는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염불도 없다.
오직 보살로 우리 앞에 나타날 뿐이다.
오늘은 보살이 일찍 나타난 덕에 좀 일찍 내려와서 지팡이를 처음 세워진 곳에 세워두고 귀가했다.
202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