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瑞雪)
하일도
2024. 12. 2. 15:22
첫눈(瑞雪)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뭔가 이상하여 이내 잠이 깬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첫눈이다.
이게 잠을 설치게 하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여 잠을 깨었구나.
이미 예고된 것이라 몰래 오는 첫눈보다 감흥이야 덜하지만,
그래도 가슴은 아이들과 바둑이처럼 설레인다.
첫눈이 오면 갑자기 생각나는 시와 산문이 있다.
그 하나가 김광균의 설야(雪夜)라는 시(詩)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 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로 시작되고
"먼 곳의 여인의 옷벗는 소리"도 기억난다.
핸드폰을 켜서 시를 말없이 읊조려 본다.
또 김진섭의 산문 백설부(白雪賦)도 찾아 읽어 본다.
젊은 시절에 느꼈든 짜릿한 전율은 아니라도 나름대로 흥이 난다.
감수성 많은 청춘의 시절에 눈에 대한 감미로운 글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겠다.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그리고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보라! 우리가 절망 속에서 기다리고 동경하던 계시는 참으로 여기 우리 앞에
와서 있지는 않는가?
어제까지도 침울한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이, 이제는 백설의 은총에 의하여
문뜩 빛나고 번쩍이고 약동하고 웃음치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 붙은 풀포기, 앙상한 나뭇가지들조차 충만한 백화를 달고 있음은 물론이요,
꾀벗은 전야(田野)는 성자의 영지가 되고, 공허한 정원은 아름다운 선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은 성화(聖化)되어, 새롭고 정결하고 젊고 정숙한 가운데 소생되는데,
그 질서, 그 정밀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며 영원의 해조(諧調)에 대하여 말한다.”
또, 우리가 잘 아는 서예의 대가 왕희지(王羲之)의 5째 아들 왕휘지는 산음땅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자 큰 눈이 내려
사방은 온통 하얀 빛으로 덮혀 있었다.
그는 술상을 가지고 오게 하고 방안을 오가며 시흥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다
문득 친구 대규(戴逵: 당시 조각의 대가임)가 생각났다.
당시 그 친구는 멀리 섬계라는 곳에 살았는데 서둘러 작은 배를 타고 밤새 저어가서
날이 샐 무렵에 친구집에 당도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생각에서 인지 친구를 부르지 않고 그 길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그 까닭을 묻자 왕자유가 이렇게 대답했다.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온 것뿐이요.
그러니 대규를 만날 필요가 있겠소?(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
또 왕중양(王重陽)이 개조한 전진교(全眞敎, 도교의 일파) 5대 진인(眞人, 道士)
장춘진인(長春眞人) 구처기(丘處機)가 지은 무속염(無俗念....속됨이 없는 마음)의
구절이 생각난다.
당시는 배꽃 피는 시절인 한식이라 눈이 내릴 리는 없지만 배꽃을 눈에 비유한 표현이
경이롭다.
“무늬 없는 흰 비단의 향기 무르익고, 白錦無紋香爛漫(백금무문향란만)
옥가지엔 눈발이 꽃망울처럼 쌓였구나. 玉樹瓊苞堆雪(옥수경포퇴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이런 아름다운 상념에 잡혀 있는 것만 아니다.
첫눈이 오기 전에 배란다 화분에 심어진 고추와 무를 수확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들이 더 성장하도록 날씨가 따듯해지기를 바랐다.
첫눈 소식을 듣고 어제 일찍 집에 들어가 화분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모임으로
늦어 그냥 방치하고 잠을 청했다.
새벽에 밖이 훤하여 일어나 창문을 보니 온통 백설이 난무하여 화분과 식물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특히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닥풀꽃 줄기가 꼬투리에 쌓인 눈의 무게로 90도 이상
절하고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따듯한 녹차 우려 마시면서 창밖에 분분히 내리는
눈을 감상한다.
한편으로 눈에 쌓여있는 화분의 식물들이 얼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2024,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