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청계산장

하일도 2025. 2. 7. 17:23

청계산장

 

청계산장은 청계산 바로 아래 텃밭에 지은 농막으로 대학동기들이 지은 이름이다.

모 고등학교 동문들이 하는 텃밭에 대학동기가 있어 그 덕에 우리도 일년에 몇 차례

산장을 이용한다.

오래 전부터 명절 지난 다음날 그 곳에서 모임을 갖기 때문에 설 다음날인 어제도

만남을 가졌다.

인덕원역에서 만나 마트에 가서 삽겹살 등 요리 재료와 막걸리, 소주 과일 등을 사서

각자 가지고 온 배낭에 넣고 마을버스를 타고 산장에 오른다.

설 전날 산장에 눈이 많이 왔으니 올 때는 옷 따뜻하게 입고 아이젠 가지고 오라는

산장지기의 전갈과 눈내린 산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받은 터라

마음은 더욱 설레인다.

낮 12시쯤 인덕원역 2번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니 서울구치소로 가는 애국자들도

많이 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수형생활 중에 수없이 서울구치소를 온 추억이 되살아 난다.

산장은 마을버스에 내려 1킬로미터를 걸어서 올라가야한다.

산야에는 제법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주위에는 눈의 무게로 넘어지거나 뿌러진

소나무가 제법 보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별유천지에 온 기분이고 맑고 찬 공기가 마음을 청신하게 한다.

마트에서 산 요리 재료와 술, 집에서 가져온 반찬, 고급 커피 내린 것,

비싼 우롱차 등을 꺼내니 푸짐하다.

양주가 2병, 포도주가 1병 더 있다.

작년 추석 명절 뒤에는 발렌타인 30년을 가져온 동료도 있었다

우선 포도주를 마시고 이어 양주를 마신다.

움막에는 큰 난로가 있어 불을 피우고, 밖에도 불을 피우는 곳이 있어 불을 붙힌다.

전기톱을 구하여 부러진 소나무를 잘라 장작을 많이 쌓아 두었으나 굵고 물기가

가시지 않아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산에서 죽은 잔가지를 모아 불을 붙이니 장작불이 활활 잘 타오른다.

난 밖에서 불돌이가 되어 연기를 마시며 불을 땐다.

어릴 때도 시골에서 소죽 끓이는 담당을 하여 불을 땔 때 불에 정신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갖는다.

요사이는 불멍이리고 표현하기도 한다.

잔치는 벌어지고 각종 술을 마시며 청춘의 시절에 벌어진 무용담과 그 후 50년이 넘는

동안 겪은 이야기들로 산이 시끄러울 정도로 떠든다.

해마다 여러차례 듣는 노래와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좋아서 웃고 즐긴다.

이게 50여년을 넘게 우리를 하나로 만든 굴레인가 보다.

뭣이 그리 좋아 오래 전에는 매주 화요일 만난다고 하여 매화회로 했다가 이제는

격주로 만난다. 만날 때 마다 잔치다.

가끔 떨어진 형제보다 더 자주 만난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서산에 해는 기울고 아이젠을 단디하고 내려 왔다.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데 서울구치소에서 버스를 한가득 채우는 애국자들이 탄다.

지하철 역으로 들어오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서울구치소 가는 길을 묻는다.

이제 밤이 오고 날씨는 추운데 무엇이 애절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러 들이는 것인가?

집에 와서 꿈을 꾼다.

가끔 나타나는 꿈이다.

70년대 후반에 해인사 원당암에서 겨울을 난 적이 있다.

새벽마다 주지스님의 꿈결 같은 독송과 목탁소리를 듣고 마음은 선경속을 헤맨다.

포근한 어느 겨울밤에 독송과 목탁소리 중간에 가끔 산을 울리는 딱, 딱 하는

큰 울림을 주는 악기가 등장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가야산이 온통 눈으로 뒤덥혔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그 소리가 뭐냐고 물어보니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라고 한다.

이런 자연현상으로 절의 불목하니는 겨울을 따듯하게 할 장작을 마련하는가 보다.

202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