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夢, dream, ambition, vision)
오늘 주제 발표 제안은 creative thinking contest입니다.
저는 오늘 꿈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꿈이라 하면 한자말로 몽(夢)이라 하고, 영어로는 보통 dream이라 하지만, 적극적으로 야망(ambition)이나, 장래의 희망(vision)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하는 꿈 이야기는 위대한 정복자들이나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킨 충신이나 열사의 이야기도 아니고, 위대한 성인들, 예컨대 예수나 석가, 마호메트, 공자와 같은 위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또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통일이나 평화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4차 산업이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는 매달 하는 영락 포럼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많이 들어 왔고, 언론이나 방송, 나아가 sns를 통하여 수없이 접하여 왔기 때문에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식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동양의 사상가 중에 양주(양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주는 유교와 거리가 먼 노장사상가로 분류되면서 동양의 에피쿠루스라고 불릴 정도로 쾌락주의자입니다.
그분은 ‘내 터럭 한 오라기를 뽑아 천하를 구제 한다 해도 그것을 뽑지 않겠으며, 천하가 자기 한 몸을 받들어 준다 해도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하고, ‘사람들 모두가 터럭 한 오라기 손해 보지 않고,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스스로 다스려질 것이다’고 했습니다.
털 한 올이 모여 살을 이루고, 살이 모여 뼈와 사람을 이룹니다. 남이나 사회, 국가가 처음에는 털 한 올을 요구하지만 결국에는 살과 뼈를 요구하고 목숨을 요구할 것입니다. 결국 털 한 올이 사람의 목숨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주의 위 사상은 평생을 두고 화두로 삼아도 좋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복잡한 세상이야기는 내려놓고 인생의 덧없음을 의미하는 허망한 꿈을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주제는 creative와 반대되는 decreative하고 destructive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중국 당나라 때 이백(李白)이라는 시선(詩仙)이 있습니다.
그의 문장 중에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봄날 밤에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동산에서 잔치를 열며)가 있습니다.
중국의 문장 장르 중에 서(序)라는 분류가 있는데, 이는 시도 아니고 어떤 행사를 하면서 행사의 경위 나 의미 등을 처음 애기하는 내용으로 혹자는 지금의 수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저는 위 문장 중 전부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처음 3구절만 애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천지자(夫天地者)는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요,
광음자(光陰者)는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
이부생약몽(而浮生若夢)하여 위환기하(爲歡幾何)뇨?
1, 2 구절의 해석을 곁들이면
대저 하늘과 땅인 이 우주는 모든 만물들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이요.
시간, 즉 세월은 영원히 지나가는 나그네로다.
만물 속에 우리 인간도 포함됩니다. 인간은 이 우주에 던져져 영겁의 세월 속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보잘 것 없는 무상한 존재입니다.
3구절을 해석하면
그리하여 뜬 구름같이 인생이 꿈만 같아서, 일생동안 그 기쁜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습니다.
옛사람들은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라 하여 마치 산다는 것은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그 구름이 사라지는 같이 덧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인생이란 위대하지도 않고, 짧고 무상하다는 의미겠지요.
인생 고작 70이란 말이 있습니다.
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여 옛부터 칠십살까지 사는 사람은 더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의식주나 의학 등이 발달하여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만 70이든 100세든 이 우주와 영겁의 시간에 비춰보면 찰나에 불과할 정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생노병사에 굴레 속에서 살아가도록 운명 지어져 있고, 근심은 갈수록 늘어나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생을 살아도 진실로 자유롭고 기뻐한 날을 계산해보면 불과 며칠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보면 위대한 정복자들이나 영웅들이나 성인들도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알 수 있으며, 그들의 위대한 노력에도 사람들은 자유를 찾지 못하고 시름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물론 동양에서 팽조라는 사람은 800살을 살았다 하나 전설에 불과하고, 서양에서는 17세기 영국의 토마스 파는 152살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파는 농부로 80살에 결혼을 하였고, 102살에 강간죄로 18년간 옥살이를 하고, 120세에 재혼을 하고 152세의 생일날 찰스 1세의 초대로 왕궁에 초대되어 산해진미를 먹고 과식하여 그날 사망하였으며, 영국왕립의학협회 소속 당대 명의인 월리엄 하베의 집도로 그의 시신을 해부하였으나 파의 내장조직은 청년 같이 건강했다고 합니다.
한편 인생을 꿈에 비유하였습니다.
삶을 한바탕 어지러운 봄날의 꿈에 비유하여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고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상가인 장주(莊周, 장자)도 호접몽(胡蝶夢)에서 낮잠을 자는데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장자가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인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라고 하여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저는 단순히 한 낮의 허망한 개꿈, 즉 백일몽(白日夢)으로 생각합니다.
다소 이른 봄날 저는 지인들과 지인의 세컨드 하우스인 안산 들꽃 마을을 방문하여 다 함께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멋진 찻집에서 맛있는 차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지인의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여 먹고, 홍매 백매 띄어 진귀한 술을 마시고, 멋진 노래도 불렀습니다.
늦은 밤 집으로 와서 긴 잠을 자는데 꿈속에 장자가 나타나 장자가 호랑나비(胡蝶)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 늦게 일어나 앞동산에 가서 하늘에 떠가는 구름 보는데, 갑자기 어제 밤 꿈속에서 본 장자가 생각나면서 내가 장자인지, 호랑나비인지, 아니면 장자, 호랑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있었던 꿈결같이 아름다운 일과 장자가 된 꿈을 그리면서 꿈이라는 노래를 읊조렸습니다.
꿈 이런가!
꿈 이런가!
봄날의 어지러운 꿈 이런가!
군옥산(群玉山) 야화리(野花里)
양지 바른 터에
봉황새 깃드는 신선궁 짓고
새벽 이슬로
감로주 빚어
홍매 백매 띄어 놓고
그대와 합환주 마시면서
천 년 만년
놀고자 했는데...
모두 다 봄날의 꿈이로다.
여기에서 군옥산을 따온 것은 이백이 양귀비를 두고 지은 청평조사(淸平調辭)라는 3편의 노래 중에 1편에 나오는 곳으로 선녀 서왕모가 살았다는 전설의 산입니다. 일명 곤륜산으로 칭하기도 하는데 무협지에 가끔 나타나는 산입니다.
고요한 밤 종소리 듣고 꿈속의 꿈을 불러 깨우고, 맑은 못의 달그림자 보고 몸 밖의 몸을 엿보네!
이선호 씀
*발표 의도나 회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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