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가 되었습니다.
8년전 봄눈이 날릴 때 77세를 일기로 어머님이 먼저 가시더니 달빛이 가득한 이른 겨울에 88세를 일기로 아버님마저 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꿈속에서 힘들어 하시던 아버님을 단정한 한복차림의 어머님이 깨긋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자 금방 화색이 돈 어버지께서 보름달같이 웃으시면서 저를 보고 계시기에 아버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 몇해 동안 힘들어 하신 모습을 지켜 보았고 최근 여러달 동안 심신이 극도로 악화된 아버님 이셨기에 고향에서 아버님을 모시는 형님의 전화만 받아도 깜짝 놀라곤 하였습니다. 수일 전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의 꿈이 나에게 보여준 마지막 아버님의 임종의 모습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임종했다는 형님 전화받고 북받치는 설움안고 가족들과 정신없이 고향에 달려갔습니다. 황망하여 제대로 연락도 못햇는데 영안실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조화가 세워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분에 넘치게 찾아주시고 애도해 주신데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아버님을 하늘나라로 잘 보내드렸습니다. 거듭 그듭 감사드리고 그 빚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부모님이 안계시고 좋은 일어 있어도 자랑할 부모님이 안계십니다. 저는 이제 완전한 고아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3남매 두고 큰 놈이 벌써 30를 바라보는 50중반이 넘은 놈이 무슨 고아라고요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고 야단도 맞고 싶고 좋은 일 하여 칭찬도 받고싶은 것이 자식인가 봅니다.
아버님을 보내시는 동안 겨울 답지 않게 내내 날씨가 맑고 따듯했고 밤이면 둥근 보름달이 천지를 비춰주고 있어 모든 것이 아버님과 연관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났습니다.
아버님의 함자는 월(月)자 영(盈)자입니다. 달이 가득 차다는 뜻인데 어릴 때부터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물어보고 싶어도 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수(米壽)에 달이 가득 찰 때 돌아가셨나 봅니다.
아버님은 무학(無學)에 글을 깨치지 못하고 평생 시골에서 땅을 파며 8남매를 낳고 10남매를 길으셨습니다. 그래도 문중사람들이나 동리나 외지 어른들이 집안대소사에 모르는 것이 있다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항상 아버님에게 와서 도움을 받아 가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님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집에는 술동과 술병이 넘쳐났고 집안에 손님들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우리집은 찾는 손님들은 술을 괘짝으로 가져오기 다반사 였습니다. 손님이 올때마다 어려운 살림에 술상을 챙기고 식사준비를 해야하는 어머님과 자주 다투곤 하였습니다.
아버님은 젊으셨을 때부터 "우리집은 단명한 집안이라 50을 넘기기 힘들다, 회갑을 넘기기 힘들다"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셨는데 회갑잔치 받고 7순잔치 받고 8순잔치 받고 미수까지 사셨으니 수복이 많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외지 손님들이 마을을 찾으면 으례 우리집 사랑방에 머물곤 하였는데 그분들 중 점장이들이 우리 부모님의 점을 보여주고 단명할 운명이나 덕을 많이 쌓아야 장수한다는 말을 듣고 더더욱 자신보다 남을 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버님으로 부터 다른 형제자매들 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나무라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제가 학비나 용돈을 달라고 해도 돈이 없다고 말씀한 적이 없고 또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제가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이 주셨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땅을 파며 고생하시는 아버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져 더 열심이 노력하려고 했고 아버님은 이런 저를 흡족히 생각하셨나 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돈이 아닌 노력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안 일을 열심히 도와드렸고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물고기를 개천이나 도랑에가서 수시로 잡아 드렸고 심지어 몸에 좋다는 뱀도 잡아 드린 적도 있습니다.
몇해 전부터 아버님은 잠을 잘때 소꿈을 자주 꾸었나 봅니다. 제가 가끔 고향을 찾아 함께 잠을 자는 날이면 "이랴, 이놈의 소!" "어디 어디, 노로 노로"하시는 소리를을 듣곤 하였습니다. 평생을 시골에서 소와 함께 생활하셨으니 꿈속에서도 소와 함께 생활하셨나 봅니다.
또 꿈속에서 소는 조상을 나타낸다는 말을 듣기도 하여 아버님도 머지않아 조상을 찾아가느라 소꿈을 꾼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달 전에는 깜깜한 이른 새벽에 어버님이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시어 제가 "아버지! 어디가십니까?"라고 하니 벌써 마당에 나가신 아버님이 "오늘은 일찍 안마실 밭에 거름을 실어 내야하니 선호 너는 소죽을 끓여 놓으라"고 하시어 마당에 가서 아버님을 방으로 데려오니 벌써 아래 바지가 젖어 있었습니다. 소변을 보러 마당으로 나가다가 옷에 소변을 눈 것이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수 많은 추억으로 점철된 아버지는 이제 하늘나라로 가시고 댕그러니 혼자있는 저 자신이 무척 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8년전 어머님을 여의고 죽음을 달관하려고 무던히 애쓰보았지만 어머님이 생각 날때마다 혼자 눈물을 감춘 것은 인간이기에 버릴 수 없는 세상의 정인가 봅니다.
열자(列子)는 이렇게 말하였더군요.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이요(可以生而生,天福也),
죽을 때가 되어 죽는 것 자체가 큰 복이다(可以死而死, 天福也)
살 수 있음에도 살지 않는 것은 천벌이요(可以生而不生,天罰也),
죽어야 할 때 죽지 않는 것도 천벌이다(可以死而不死, 天罰也)
2008년 12월 14일 고아 이선호
보통 상주가 상중에 자신을 지칭할 때 고애자라는 표현을 씀니다 마는 저는 격식에 구애됨이 없이 생각나는대로 쉽게 고아라고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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