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응태부인의 사랑 이야기

하일도 2007. 12. 25. 10:51

우리는 흔히 세기의 사랑을 이야기 할 때 미인들의 불륜한 사랑을 떠올리고 한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 그렇고 최근에는  회자되고 있는 변양균과 신정아의 놀음도 그렇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하여 41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어지고 앞으로도 영원이 어지질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세계 28개국, 23개 언어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11월호가 머리카락과 삼을 엮어서 만든 "미투리(짚신) 한 켤레와 원이 엄마의 사랑의 편지"를 특필했다.

 

고성(固城) 이씨인 고인 이응태가 세상을 뜬 것이 1586년 5월이고 묘지가 발굴되어 유물과 시신이 나온 것이 1998년 5월이니 딱 412년만에 이들 부부의 지극한 사랑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현대판 타임 캡슐영화에 비유할 사건이다.

 

원이 엄마는 어느 한 날도 변함없이 병든 남편의 쾌유회복을 기원하는 일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과 비벼 미투리를 만들었고 천지 신명께 기도했다.

그러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남편을 아주 멀리 떠나 보내야 하는 숙명적인 시간이 임박하면서 구구절절 애절한 사랑의 절규를 써내려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간곡한 아내의 지극 정성을 뒤로하고 끝내 남편이 새상을 뜨게 되자 원이 엄마는 영혼을 담은 사랑의 편지와 미투리를 먼옷(시신에 입히는 옷)주머니에 넣었던 것이다.

 

 화제의 현장은 경북 안동시 정상동으로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묘지 이장으로 인해 출토된 것이다.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되는 원이 엄마의 애틋한 사상의 편지는 편지 봉투가 필요지 않았다. 원이 아버지의 유물과 함께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었다. 원이 엄마의 지극정성을 헤아리지 못한 체 끝내 운명을 달리한 남편의 손에 편지를 쥐어 줄 수 밖에는 또 다른 도리가 없었을 원이 엄마.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게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 말을 듣고 어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 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가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중략-   당신의 한갓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쓰지 못하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로 끝나는 원이 엄마의 편지가 응태부부의 사랑이야기로 승화된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물질주의와 쾌락에 빠져 일시적 만남과 헤어짐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응태부인의 사람이야기는 분명 사랑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것이고 어쩌면 운명같은  사랑의 진실(원형질)을 보여주고 있다.

 

원이 엄마의 편지는 안동대학교 무용학과 정숙희교수를 통해 '450년만의 외출'이라는 현대무용으로 발표되기도 했고, 전미경 안동국악단장은 애절한 사랑의 편지글을 '무한지애(無限至愛)-원이 아버지에게'라는 제목으로 국악가요로 창작해 제4회 안동국악제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사랑과 영혼' '능소화' '선비와 피어싱' 이라는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우리가 고금의 사랑이야기를 말할 때 으레히 당현종과 양귀비를 노래한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를 떠 올리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사랑의 영원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들의 사랑은 응태부인과 달리 비극을 잉태한 사랑이었다.

 

응태 부인의 편지 속에 장한가의  귀절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있어 장한가의 마지막 몇 귀절을 올려본다.

 

臨別殷勤重寄詞(임별은근중기사)...작별에 즈음하여 간곡히 거듭 말하되,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량심지)...말 가운데 맹서가 있으니, 두 사람 만이 아는 것.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한 밤 인적이 없을 때 속삭인 말씀.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하늘에 가서는 암.수가 붙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땅으로 가서는 두 나무가지가 붙어 있는 연리지가

                                                되자고 원했던 말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하늘이 아무리 길고 땅이 아무리 오래라도 다할 때가 있

                                                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우리들의 이 사랑의 한은 면면이 이어져서 끊일 날이 없

                                                구나!

 

 동시대의 시성 이태백도 두 사람의 사랑을 노래한 유명한 청평조사(淸平調詞) 3편이 있다.

 우리도 더 많은 문인들이 나타나 응태부인의 사랑 이야기를 노해하는 대작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