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내리는 눈은 안타까움이다. 시인 김춘수는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고 운(韻)을 뗀다. 춘설은 ‘봄을 바라고 서 있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바르르 떨게 하고, 또 이를 어루만지며,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서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고 했다. 샤갈은 러시아 출신 화가다. 첫사랑은 8살 연하의 벨라인데,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검은 장갑을 낀 신부’의 주인공이다. 샤갈은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로 향하지만 눈 덮인 고향과 연인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 그림이 ‘나와 마을’로, 분할기법을 도입한 화폭에 고향에 대한 애틋한 희망과 열띤 그리움이 담겨 있다. 바로 김춘수의 시 ‘샤갈…’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다.
그런데 춘삼월도 아니고 봄꽃들이 아우성치는 춘사월, 영동 지역에 대설주의보와 함께 폭설이 쏟아졌다. 봄 눈발이 장독을 깬다지만, 한편으로는 봄눈과 숙모의 매는 무섭지 않다고 했다. 한 자 깊이 쌓인 폭설도 한 자락 봄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강원도에 눈꽃이 만발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엔 벚꽃이 만개했다. 법정스님은 “매화는 반쯤 핀 것이, 벚꽃은 활짝 핀 것이, 복사꽃은 멀리서 봐야, 배꽃은 자세히 들여다봐야 자태가 아름답다”고 했다. 철 잃은 눈꽃이야 봄 가뭄이라도 풀어주지만, 밤 잃은 벚꽃은 잠 못 드는 젊은 영혼의 애만 태우나.
잎이 먼저 나오고 꽃이 핀다. 봄꽃은 지난해 잎에서 생성된 개화(開花)호르몬이 천천히 작용해 마치 새봄에 꽃부터 핀 것처럼 착시(錯視)를 일으킨다. 이 개화호르몬이 사람들 가슴에도 작용해 겨우내 쌓여 잔설(殘雪)로 남은 갈등일랑 봄눈 녹듯 사라지고, 희망의 꽃이 활짝 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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