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송강의 농어(순로지사)

하일도 2014. 6. 16. 15:25

■ 아름다운 강남지방, 상해요리(1)


▶ 2002/8/19

청나라의 건륭황제는 강남지방을 여섯 번이나 찾았다. 경치가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어 멀고도 먼 강남을 거듭하여 찾았던 것이다.
“하늘 위에 천당이 있고 하늘 아래는 소주(蘇州, 쑤저우)와 항주(杭州,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정도로 자랑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수려한 풍치도 아름답지만 피부가 우유빛으로 뽀얀 미인들이 유달리 많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다. 이러니 중국에 태어난 사나이라면 쑤쪼우와 항쪼우에 살어리랐다를 읊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튼 이렇게 역사 깊은 강남지방을 음식문화면에서 보자면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으나 그 대표로는 아무래도 상해요리를 드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일은 전통적으로 상해요리가 별도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상해가 근세에 들어 발전하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이 지역을 대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해요리에게 음식문화에서의 지역대표성도 주어졌던 것이다.

■상해와 상해요리

상하이는 줄여서 호라고 하는데 이것은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통발을 뜻하므로 상하이가 옛날에는 조그만 어촌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실제로 상하이는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조그만 어촌이었으나, 금(金)나라의 침략으로 밀린 남송(南宋)이 서울을 항주(杭州)로 옮긴 13세기 무렵 비로소 상해진(上海鎭)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하이는 개방과 개혁의 중심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1990년 여름 홍콩의 우리나라 금융기관 및 무역회사 대표들과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그 때만해도 넓은 땅 곳곳이 빈터만 드러낸 보잘 것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포동지구는 북한 김정일위원장 표현을 빌리면 천지가 개벽했다. 초현대식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는 위용은 아시아를 뛰어넘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꽃이라 하겠다.

상해(上海, 상하이)는 북경, 천진, 중경과 함께 중앙정부의 직할시로서 인구가 12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상공업도시이기 때문에 수출입물량이 많고 조세부담도 커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 일반시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한때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며 번성했던 탓인지 옷맵시가 세련되고, 상해에서만큼은 영어에 능숙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저런 이유에서일까.
상해사람들은 북경사람들에게도 자존심을 굽히려 들지 않는다. 일본의 교토사람이나 오사카사람들이 도쿄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다고 하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국가의 주요지도자급 인물들을 보면 거의가 상해방(上海幇)으로 일컬어지는 범 화동출신들로서 강택민 국가주석, 주용기 총리, ‘붉은 자본가’ 라는 별명을 얻으며 부총리를 역임한 룽이런(榮毅仁)을 비롯해 홍콩과 대만의 수많은 유명 기업가들이 상해 지역 출신이며, 장제스(蔣介石) 시절에도 ‘상하이 상인들이 화를 내면 천하의 제후들이 놀란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

■두렁허리 볶음(쭈쑨산후)

선어는 겉의 색이 노리끼리하므로 황선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는 두렁허리라고 하는 민물장어의 일종이다. 영양소가 풍부하고 오장을 보호해 주는 효과가 있다. 두렁허리를 토막내어 죽순, 생강가루, 간장, 술 따위를 넣고 볶아낸 것으로 상에 오를 때까지 지지지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송강(松江, 쏭지앙)의 농어

중국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민물고기로 황하의 잉어가 있고 송강의 농어가 있다. 송강은 태호(太湖)에서 시작해 상해를 거쳐 장강(長江)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상해에 속하는 송강(松江)현도 이 강 이름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강의 농어는 서리가 내린 후 나타나 동지 때에 가장 많이 잡히는데 이때가 산란기로서 알 낳기 전이 살도 많고 맛도 좋으며 알을 낳은 후에는 맛이 떨어지므로 제값을 받지 못한다. 모든 물고기는 아가미가 좌우에 하나씩 두개지만 농어는 두개씩 네 개가 있는 것이 특징인 데다가 비늘이 없고 껍데기가 얇아 요리할 때에는 이 껍질을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진(晉)의 장한(張翰)이라는 이는 낙양에서 벼슬을 살았는데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고향의 농어회와 순채국(蓴菜湯) 생각이 간절하였다. 사나이 태어나서 이 정도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고서는 사표를 던지고서 천리 길 재촉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때부터 순로지사라 하면 고향땅, 고향음식을 그리워함을 뜻하게 되었다.

우리 같으면 관직에 오른 이로서 양반인 신분에 한낱 음식 때문에 관직을 버린 것에 두고두고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나 여긴 어디까지나 중국. 중국에서는 미식가의 한 표본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점이 우리와 크게 다르다.

이밖에도 상해요리로는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것들이 많다.
대바구니에 넣어 찐만두로, 만두 속에 육수가 들어 있는 소롱포(小籠飽, 샤오롱빠오)라든가 닭고기를 파라핀종이에 싸서 볶은 지포계(紙包鷄, 즈빠오지) 따위가 유명하다. 소롱포는 깨물어 먹을 때 자칫하면 뜨거운 국물이 터져 나와 데거나 옷을 버리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상해에 가면 꼭 들려볼 만한 음식점으로는 예원(豫園, 위위앤) 부근의 녹파랑찬청(綠波廊餐廳, 루뽀랑찬팅)과 남상만두점(南翔饅頭店, 난시앙만터우띠엔), 그리고 역사가 오랜 노정흥채관(老正興菜館, 라오정싱차이꾸안)이 있다.

■항주(杭州)와 항주요리(浙菜)

항주(杭州)하면 눈앞에 서호(西湖)가 널찍하게 펼쳐지고 코에는 룽징차(龍井茶)의 차향이 스며든다.

면적이 5.6km2, 그리고 깊이가 평균 2.8m인 서호는 중국의 호수 중에서 그리 크거나 깊은 호수는 아니고 물도 맑지는 않지만 예로부터 이곳이 낳은 미녀 서시(西施)와 더불어 많은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마르코 폴로는 일찍이 항주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하였고, 소동파로 하여금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 오는 날도 좋다고 찬탄하게 만든 서호는 계절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맛으로 미관이 뛰어나다.

■동파육(東坡肉, 똥풔르어우)

동파(東坡)는 송나라 때의 정치가이자 위대한 문학가이고 또한 뛰어난 미식가였던 소식(蘇軾)의 호이다. 오죽했으면 호를 노도, 즉 식탐 늙은이라고까지 하였겠는가. 당쟁에 밀려 호북성 황주(黃州)라는 곳으로 좌천된 적이 있었다. 이 때 친구에게서 동쪽의 밭을 빌려 경작을 하였기 때문에 동파거사(東坡居士)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금수강산에 대해 전해 듣고 “원컨대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고 싶구나(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정치가로서 문학가로서 중국 곳곳에 그의 발자취가 없는 곳이 없고 많은 음식이 그와의 인연을 말해주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 요리도 그러하다.

그가 항주(杭州)에서 태수를 지낼 때의 일이다.
아름다운 서호도 관리 소홀로 일부가 메워지고 잡초만 자라 폐허화되어 농사짓는 저수지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이를 본 소동파는 백성들의 힘을 빌어 완벽하게 복구하였다. 항주 사람들이 이를 고맙게 생각하여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방법이 지극히 중국사람들답다.

그들은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돼지를 바쳤는데, 백성을 사랑하는 그가 혼자 챙길 일은 아니어서 그는 이 돼지를 모두 요리시켜 같이 먹었고, 사람들이 그 맛에 탄복하여 그의 호인 동파(東波, 똥풔)를 따 동파육(東波肉, 똥풔르어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동파육은 들어가는 재료도 많지 않고 요리법도 비교적 간단하여 우리 도 한번 시도해볼 만 하다고 생각된다. 동파육은 돼지고기 삼겹살부분을 큼직하게 썰어, 끓는 물에 살짝 삶았다가 찬물에 씻은 다음 파, 술, 간장 따위를 함께 넣고 약한 불로 졸이다가 약간의 설탕과 뜨거운 물을 붓고 센불로 끓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