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내가 좋아한 글(송설 37)

바우의 전설

하일도 2020. 4. 22. 07:58

바우의 전설

이선호 추천 0 조회 26 03.11.20 14:1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바우는 내가 수년전에 키우다 이별한 진돗개의 이름이다. 
내 식구 중 부모 형제를 제외하고 처음 이별한 놈이 바로 이 바우다.
누구나 개에 대한 추억은 있게 마련이지만 나도 시골에서 자라면서 항상 개는 우리가족의 일원으로 알고 있었고
또 때가 되면 잡아 먹히거나 팔려가는 가축정도로 생각해 왔다.
이럴 때도 어린 마음에 부모가 야속하다고 생각도 해 봤지만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
이내 잊어버리곤 하였다. 또 어린 마음에 나는 크서 개를 키우지 않아야지....
이별하는 것이 슬프거던 하고 생각를 하곤 했다.


그런데 1987년 초겨울 우연히 바우를 키울수 밖에 없던 사정이 생겼다. 
덕수궁부근에서 변호사업을 하던중 한 젊은이의 어려운 사정을 접하고  
나는 그를 가엽게 여겨 도와준 적이 있었다.  
몇 개월 후에 이 총각이 내 사무실에 찾아와 상자를 내놓으면서 
"변호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 보답은 못하고 형님이 살고 계시는 고향인 진도에 갔다가 진돗개가 새끼를 낳아 형님에게 변호사님 이야기를 하니 형님께서 진돗개 새끼라도 한 마리 갖다 드리라고 하여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가져왔다"고 하면서 성의로 알고 받아 달라고 하였다. 
나는 거절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비춰질까 고맙다면서 잘키우겠다면서 이를 받았다.
물론 이 친구는 진돗개에 대하여 소상하게 설명해 주면서 새끼 진돗개는 부모가 우수한 혈통을 가진 순종이라면서 족보와 반출증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털이 흰 숫놈이었다. 


나는 퇴근시간에 승용차에 백구를 가져가면서 여러가지 생각를 해 봤다. 
마누라는 개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큰아들 원찬이와 둘째아들 원각이는 좋아할 거야. 
아직 젖먹이에 지나지 않은 막내딸 경주도 좋아 할거고....


나는 당시 수유리 개미골목에 있는 대지가 40평되는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집은 작고 비록 노후하지만 마당에 오래된 대추나무와 살구나무가 있었고,
대문앞 담장에 줄장미가 있어 봄부터 집이 장미꽃으로 덥혀 있었다.
연탄과 쌀장사를 하는 둘째 매형이 산 집인데 내가 집이 없자 저렴한 가격으로 전세로 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강아지를 내놓자 물론 아이들은 좋아라 소리 쳤고 마누라도 사정들 듣고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나는 이 놈을 바우라고 이름지어 주었고 이로써 바우는 우리식구가 되었다.


당시 초겨울이라 어린 바우를 방안에서 키울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바우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봄이 되자 바우는 제법 밖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밤에 방안으로 들어와 잠을 자곤하였다.
나와 내 처는 이런 바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바우에 대하여 냉정하게 대하였다. 


바우는 잘 컸다. 
1년정도 지나자 어미같아 졌고 개 목줄하여 묶어 두었는데도 줄을 끈고 대문밖으로 뛰쳐 나가기도 하고
어린 경주를 물기도 하였다. 바우가 경주를 물어 아직도 귀와 턱밑에 물린 자국이 있다. 
또 바우가 숫놈이고 보통 하루 종일 집에 묶여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성질이 날카롭게 변하여 주인를 보고 짖기도 하였다.
암개들이 대문앞에서 어른거리면 발정을 이기지 못하여 발광을 하였다.


내가 살던 집도 1990년경 재개발을 한다고 하여 이사를 갈수 밖에 없는 사정이었는데
이사를 가지 않으면 공사를 할수가 없게 되자 조합원 아줌마들이 밤마다 이사를 가지 않은 집을 돌면서 이사가라고 소란을 피었다.
특히 우리집에 와서는 (집을 빨리 비어주지 않는다고)악덕 변호사 나가라면서 소리치곤 하였는데  
이 때 바우가 무섭게 짖어대자 아줌마들이 도망가기도 하였다.
결국 나도 이사를 가기로 하고 방을 구하였으나 바우를 키울 만한 독채 가정집을 구할 형편이 되지 못하여
가까운 2층집으로 전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문제는 바우였다. 남의 집에 세살면서 다 큰 바우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이웃에 수소문하여 바우를 키울 사람을 찾아 바우를 인계해 주기로 하였다.
그러자 바우를 키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우리 가족은  안타깝지만 바우와 이별 준비를 하였다.
이 같은 사정을 바우도 아는지 하루종일 밥도 잘 먹지않고 힘없이 앉아 있었다.
나도 역시 개는 키울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이사 가는 날 바우를 넘겨주려 했으나 인수인이 그냥 집 나무에 묶어 두면 자기들이 알아서 끌러 가져 가겠다고 하여
우리는 이삿짐을 챙기고 대문을 닫고 바우와 이별하고 나왔다.
새로 구한 전세집으로 가서 이사짐을 내리다가  내 처가 집에 안가져온 물건이 있다면서 혼자 되돌아 갔다가
한참 뒤에 울면서 돌아 왔다.
그이유인 즉, 예날집에 이르자 대문안에서 연기가 나면서 노린내가 심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대문을 열어보니 바우를 키우겠다는 사람과 몇 명의 남자가 바우를 죽여놓고
도치램프로 털을 그을고 있어 놀라 정신없이 뛰어 왔다는 것이다.
이를 듣고 아이들도 울고 나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인계한지 1시간이 되지 않아 약속을 어기고(물론 처음부터 거짓이었지만) 바우를 잡아 먹는 그 사람이
괘씸도 하였지만 어차피 너는 하나의 가축에 지나지 않고 내가 어릴 때 보아 온 것 처럼
사람들의 보신재가 되어 세상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서 위안를 하였다.
이렇게 이별하고 마는 것을 바우의 족보를 분실했다고 내 처와 왜 그렇게 다투었든지.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가끔 바우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경주의 얼굴에 난 상처 자국를 볼 때이다.
바우가 자기를 오래 오래 기억해 달라고 낸 상처일까?
이제 우리 경주도 18살인데 아버지로서 성형수술이라도 해주어야지.
대신 바우에 대한 전설은 이 글에서 남겨야지..     


    
 
다음검색
댓글
  • 첫댓글 03.11.20 00:06

    아니~ 이건 이변호사님 체험담이 아닌가? 바우의 전설 이야기 잘 보아 들었네. 그러니 동물과 정을 붙인다는 것이 사람만 하겠는가?

    답글
  • 03.11.20 00:18

    아픈 과거사가 었엇구먼 이변호사!! 그넘들은 족보보단 고기가 앞섰던 상놈들 인게야...똥개들 인게야...먹을게 따로있지.

    답글
  • 03.11.21 18:05

    가축은 가축일뿐, 얼릉 애기 수술이나 해 주시게.....ㅋㅋㅋㅋ 사모가 그집에 가지 말랐어야 했는디..

    답글
 

 

'나의 글, 내가 좋아한 글(송설 37)'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  (0) 2020.04.22
이따맞게 해줘  (0) 2020.04.22
정력제(쥐고기)  (0) 2020.04.22
자고천(황정견)  (0) 2020.04.22
곤(鯤)과 붕(鵬), 그리고 대 자유인   (0) 20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