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아, 질 테면 지라.
보름 정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한 모란은 이제 지고 없다.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온다는 음력 삼월 삼진이 모란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2년 전 흰 눈 날리는 봄에 소복 입은 어머님 떠난 날이라 새벽에 일어나 떨어지는 꽃잎 잠시 보다가 당신이 잠든 고향으로 가기 바빴다.
다음날 새벽 2시 넘어 집에 도착하니 아직도 꽃잎을 달고 있는 모란이 여러 송이 있다.
고맙다, 모란아.
마지막 자태를 보여주려고 힘겹게 지금까지 기다렸구나.
영랑은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고 노래했고, 조지훈은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너의 지는 모습을 보고도 섭섭하거나 슬프지 않다.
그래서 모란아, 질 테면 지라고 도발해 본다.
그 사이 간간이 비도 오고 바람도 불었다.
하지만 모란을 피우고 지게 한 것은 이들 때문 만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세월)이다.
공자도 냇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보고 "가버리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없이 "(逝者如斯夫!不舍晝夜...서자여사부, 불사주야)라고 중얼거렸다.
이 말은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한 것이 아니라 천지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화생하는 도(萬物化生之道)를 묘사한 것이리라.
40여송이가 되는 꽃잎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았다.
꽃잎으로 하루하루 차를 끓여 뜨겁게 키스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찬란했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윽한 향기 맡겠다.
모란이 떨어진 울 집 화단을 보니 그사이 라일락, 영산홍도 벌써 꽃이 떨어져 있다.
미안하다.
모란에 빠져 미처 챙기지 못하였구나.
이것이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와서 32년째 겪는 봄 앓음이다.
이런 모란의 추억과 꿈은 아내도 가족도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나만이 겪는 봄날의 독백이다.
모란이 지고 없는 허전한 오늘 왠지 조영남이 즐겨 부르는 “모란 동백” 노래가 생각난다.
노래를 듣고 가사를 옮겨 본다(이 노래는 본래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제하가 작사 작곡하고 부른 노래라고 한다).
1.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2.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 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랫 벌에
외로히 외로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202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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