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오늘은 577회 맞는 한글날, 어둑한 아침에 베란다에 나가니 가을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곧 비가 그친다고 하여 비가 그치는 대로 태극기를 달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수유리 개미골목에서 이 빌라에 이사 온지도 32년째다.
9세대가 사는데 다른 세대는 벌써 좋은 곳으로 이사가고 우리가족만 남아 있다.
첨부터 국경일 태극기는 내가 달아 왔고 내가 집에 없을 때 아내나 가족들에게 부탁하였다.
태극기 다는 곳은 빌라 출입담장 국기봉 꽂이이다.
다른 세대는 태극기 다는 것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수년전에 다른 세대가 이사 오고 나서 국기가 없어지다가 국기 꽂이조차 부수워 놨다.
누가 그럴까 많은 고민을 해 봤으나 아내는 새로 이사온 가족들을 의심한다.
대학 강의를 나가는 지성인으로 보이는데 어찌 태극기를 혐오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해 봤다.
얼마 전에 우리 빌라 담장 밖에 버리는 헌책들이 많이 쌓여있어 혹시 읽을 만한 책이 없을까 찾아보니
대부분 진보 좌파들이 읽는 것으로 내가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그 후에도 2차례 같은 류의 책들이 나왔다.
귀하게 여기는 책들을 왜 버릴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우리 집 3층 베란다 밖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알아 보니 태극기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고 한다.
어떤 곳에는 태극기보다 인공기를 좋아하고 공식행사장에서도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사용하는 것을
방송에서 보기도 한다.
오늘은 깜박 잊고 어두운 저녁에 태극기를 내렸다.
밖에는 투닥투닥 저녁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베란다 화분에 심은 고추는 열리는 족족 탄저병이다.
그래도 병든 고추 에서 고추장거리 장만하여 아내가 새벽부터 고추장 1단지 담았다.
탄저병 걸리지 않은 풋고추도 좀 땄다. 아내가 삭혀둔다고 한다.
황촉규도 하늘 높이 자라 무거운 꼬투리 감당하지 못하여 허리 숙이고 있다.
한동안 황촉규 꼭대기에 꺼꾸로 메달려 기도하던 사마귀도 사라지고 없다.
들깨 알은 여물어 가는데 작년만큼 참새도 오지 않는다.
나의 가을도 이렇게 깊어 간다.
2023. 10. 9.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팡이( 무념보살) (1) | 2023.12.15 |
---|---|
나의 단감나무 (1) | 2023.10.20 |
사마귀의 꿈(황촉규 6) (0) | 2023.10.17 |
너는 태풍을 기다리는 천상의 연인 (0) | 2023.09.11 |
황촉규(4 대법원) (0) | 2023.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