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감나무
대학 입학한지 50년 되는 해에 캠퍼스를 찾는다.
그곳에서 4여년의 청춘의 날을 보냈으니 갖가지 추억으로 밤잠을 설친다.
그 때는 장발, 때론 삭발도 하고, 검정 물 들인 군복입고, 맨발에 백고무신 신고
다니는 것을 멋으로 여기기도 했지.
가을이 되면 본관 총장실 앞에는 유달리 빛이 나고 맛이 좋아 보이는 감이 열리는
단감나무가 있었지.
우리들은 수년째 단감나무를 지켜볼 뿐 그 많이 열리는 단감 한쪽도 맛보지 못한채
가을을 보냈지.
저 단감을 누가 따 먹을까?
총장과 교직원, 그리고 교수들?
우리는 그해 가을 용기를 내어 독서실이 끝날 밤 12시가 될 무렵에
단감을 서리하기로 했지.
명분은 총장만 먹지 말고 학생들도 같이 농가먹자는 거였지.
그래도 내가 촌놈이라 백고무신 벗고 맨발로 감나무 위에 올라가 손으로 단감을 따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중 갑자기 사복입은 형사들과 수위들이 우리를 포위했지.
아래 있던 동료들은 다 도망가고 내 혼자 이들과 실갱이를 벌이다 감나무에서 뛰어내려
백고무신 신고 도망을 쳤지.
발에 땀이 나서 신발을 벗고 도망치다가 깜깜한 밤이라 길을 분간 못하여 낭떨어지에
떨어져 결국 체포되었지.
총장실 수위실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는데, 학생이면 봐준다고 해도 쪽팔려 묵비권을
행사하니 동네 불량배 취급을 당했지.
그 사이 도망간 동지들이 몰려와 난리를 부리는 통에 겨우 석방이 되었지.
당시는 유신시대라 학교에는 사복 형사들이 잠복해 있었지.
늦은 밤에 가까이 있는 자취집에 오니 학교 동생들이 나를 애국투사로 취급하며
상처를 치료해 주고 밤새 간호해 주어 참 행복하다는 생각도 했지.
오늘 본관 앞에 차를 데고 단대 동기들과 인사후 바로 단감나무로 달려갔지.
단감나무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늠름하게 볼에 빛을 내는 단감을 많이
달고 있었지.
너무 높게 달려있어 손으로 딸 수도 없고 발로 나무를 세게 차도 감이
떨어질 리 만무했지.
그렇다고 나무에 올라가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장대를 찾아도 보이지 않았지.
그러던중 단대 동기들이 다 모여 총장실로 가자고 하여 같이 총장님 뵙고 나오면서
사진으로나마 50년 추억을 담았지.
오늘 단감나무를 보니 이인성 화백이 1930년도 그렸다는 게산성당 감나무가 생각났지.
수년전에 게산성당을 찾으니 감나무는 그 장엄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감나무의 수명은 길다는 생각이 들었지.
어릴 때 고향 집 감나무도 그렇고 가까운 처가집 감나무는 오래 묵어 속이 썩어
비었음에도 가을이면 여러접 맛있는 감을 생산하지.
아마 수명이 100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
내가 50년 전에 꿈꾼 저 단감나무는 총장실 단감나무라 해도 좋고
켐퍼스 본관 단감나무라 해도 좋다.
비록 50년이 되도록 너의 맛을 보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내가 살아 가는 동안
너는 나의 꿈이다.
또 언젠가 찾을지 모르지만 그 때는 기어코 너의 맛을 볼테니 더욱 왕성하고
장엄하게 자라면서 학교를 지켜다오.
202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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