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삼월삼짇

하일도 2024. 5. 2. 16:00
삼월삼짇
 
삼짇날(음력 3월 3일)은 설날, 단오, 칠석, 중양절처럼 양수(陽數)가 겹치는 좋은 날로서
대지의 기운을 받은 만물이 깨어나 꽃을 피우고 생기가 돋아 오르게 하는 절기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나오기 시작하고,
또 나비나 새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린아이들은 버들가지 꺾어 피리 불고, 청춘 남녀들은 봄을 즐기려 나들이를 하고,
어른들도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고 시와 문장으로 풍류를 즐기는 그야말로 최고의 명절이다.
이날 시절 음식으로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로 반죽하여 둥근 화전(花煎)을 만들며,
쑥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 쪄 '쑥떡'도 만든다.
 
서기 353년 왕희지가 난정서(蘭亭序)를 쓰는 그 날도 삼월 삼짇날(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로서
자녀 7명과 당대의 명사 40명을 회계 산음현 난정이라는 정자에 초청하여 계사를 행하였고
(會於會稽山陰之蘭亭, 脩禊事也), 계곡물을 끌어다가 유상곡수(引以爲流觴曲水)를 만들어
시를 짓지 못하는 문사에게 벌주를 내리는 행사를 하면서 그 서문을 써서
천하 명문, 명필을 휘날렸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석북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그의 시, 삼월 삼짇날(三月三日)에서
“삼월 삼짇날이 병중에 빨리 지나가는데, 빙설이 강에 가득하여 봄기운 애처롭네
(三月三日病中催, 氷雪滿江春氣哀)”라고 하여 만물이 약동하는 삼짇날이 되어도 병든 몸에
날씨까지 추워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이를 즐기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했다.
 
나는 23년 전부터 이날에 고향을 찾는다.
이날이 바로 어머님 기일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소생, 약동하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에 어머니는
소복 입고 하늘나라로 갔다.
당시에도 찬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려 겨울옷을 입고 장례를 치뤘다.
석북이 삼월삼짇을 읊을 때와 같은 날씨를 생각하게 한다.
그 이후부터는 해마다 맞이하는 삼짇날이지만 산야에 꽃이 피어나고
나무는 연두색으로 변한다.
작년에는 우리 집 모란꽃이 거의 다 질 무렵에 고향에 갔었는데 올해는 아직 모란이
꽃망울조차 한껏 부풀리지 않았다.
가족들은 산소에 모여 먼저 간단한 제례를 올리고 부근에서 쑥을 많이 뜯고, 달래도 캤다.
오래전에 이곳 달래를 캐어 내가 사는 집 베란다 화분에 옮겨 심어 봄마다 수확하여 먹고,
올해는 씨를 받아 지인의 밭에 심으라고 줬다.
아무도 살지 않는 처가 집 밭둑에는 머위가 쉼 없이 자라고 가죽은 아직 잎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둘 다 봄기운을 느끼게 하는 나물이다.
머위를 꺾어 집에 와서 마누라가 이를 데쳐 된장 등에 무쳐 주니
쌉쌀한 맛이 나른한 피로를 잊게 한다.
이날 고향을 오갈 때마다 산야를 보면서 가끔 우울한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1.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2.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 캐는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주
3.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꽃이 되어서 웃어본다오
(봄이 오면 / 김동환 詩 김동진 曲).
2024. 4. 12.
돌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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