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죽나무

하일도 2011. 6. 6. 18:29

고향이 경북인 사람은 가죽에 관한 깊은 향이 배어 있을 것이다.

사실 옛날 시골에는 봄 반찬이 별로 없다. 요사이는 비닐하우스로 일찍 채소 제배하여 사시사철 언제나 풍성한 반찬을 맛 볼 수 있지만 우리 어릴 때반 해도 산동추, 당파, 열무, 호박잎 등으로 봄날의 맛을 이럭 저럭 채워가지 않았나 싶다.

특히 별미 중에 하나가 가죽잎이 아닌가 한다.

가죽나무는 담장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뿌리로 근방 퍼져 나간다.

우리집도 다른 집이나 마찬가지로 가죽나무가 많았다.

난 어릴 때 죽잎의 향이 너무 진하여 싫어 했다. 다만 죽자반을 해서 기름에 튀겨주면 좋아했다. 하지만 죽자반은 고급반찬이라 도시락에 넣어주지 않는다. 귀한 손님이 오면 고급반찬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가죽의 향이 좋다. 어버지 생신이 음력으로 4월 초순경이라 시골을 갈 때면 아버지와 함께 가죽순을 꺽는다. 어머니는 가죽을 잘 다듬어 서울가는 나에게도 쳥겨준다. 그러면 아내가 이를 잘 담구어 조금씩 끄내어 먹는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는 생신일이 게절에 비하여 일찍 왔던지 가죽잎이 거의 돋지 않았다. 그런데 어버지는 생신전날 톱으로 큰 가죽나무 믿둥을 잘랐다고 형님이 말했다. 심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는 객지에서 오는 자식 챙겨 주려고 이제 겨우 순이 돋은 가죽나무를 톱으로 자른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시골에 있는 형님이 항상 가죽 잎을 쳥겨주었다.

울해는 상주에 계시는 눗님이 고향에 가서 가죽잎을 따서 직접 담아 택배로 보내주었다. 어머니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왔다.

얼마전에 중학교 친구들이 친구 공장에 모여 오리와 붕어 찜 요리를 해먹었다. 그곳에서도 가죽잎이 나왔다. 고향에 계시는 친구 눗님이 가죽잎을 담아 판다고 하여 여러병을 주문하여 각자 1-2병씩 사서 가져갔다. 난 고향에서 올라올 가죽잎을 생각하고 사지 않았는데 그날 먹다 남은 가죽을 주어 집에 가져와서 잘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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