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야, 너들 너무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아작을 낼 수 있나!
너들은 들깨 씨앗이 방구같이
크게 보이나?
내 눈에는 씨방에 알이 들었는지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너들을 위하여 까치밥이라도 남겨
두는데...
하기사 너들이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알기나 하겠나?
오감은 좋아 가까이 가면 달아나고,
떠나면 나타나는
것이 특기잖아.
시골 형님이 2년전부터 들깨농사 그만 두어 매년 올라오던 들깨 1말도 없어졌다.
그래서 매년 심던 들깨 씨가
없어 올 봄에는 모종 8포기를 사서 심었다.
이럴 경우 싹이 트고 자라는 경이로운 과정을 볼 수 없다.
올해는 어야든동 씨앗 몇 개라도
남겨보려고 했는데,
너들이 열매가 여물기 전에 먼저 입으로 수확을 해버렸다.
어릴때 논에 벼가 익어갈 때면 허수아비를 세우기도
하고,
새 보러 논에 가서 훠이, 훠이 외치면 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
결국 다른 사람 논에 앉아 식사를 했지.
그래도 가을이 지나면서
알곡을 먹은 너들이 살이 찔때면
밤마다 후랫시를 들고 초가집 지붕 처마밑에 들어가 잠을 자는 너들을
손을 넣어 잡아 꾸어먹기도
했지.
눈내린 낮이면 눈을 치운 마당이나 여물간에 소쿠리를 세우고
그 밑에 알곡을 두어 너들이 먹어려고 들어 갈 때
세워둔 줄을 당겨 너들을
잡기도 했었지.
젊을 때 대붕(大鵬)을 꿈꾸며 회색도시에 나와 헛되이 날뛰다 보니
너들을 잊은지 오래다.
그래도 독가루로
만든 집 테라스에 약간의 공간이 있어
화분을 모아 씨를 뿌리고 물을 주니 식물들이 자라고,
너들이 즐겨 찾아와 놀기도 하고, 벌레나
씨앗으로 배를 채우고, 똥을 싸니
식물과 더불어 나의 벗이 되어 주었다.
벗이란 무엇인가?
내 심장을 내워주어도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면
수년동안 들깨 씨앗 빼먹는 다고 너를 그렇게 탓하고,
작년에는 너들 못먹게 하려고 들깨씨가 들기전에
모두 베어 이를 설탕에 절여 둔 것이
너무 부끄럽다.
들깨잎을 얻었음에도 씨앗까지 독점하려고
너들에게 못할 짓을 했나보다.
용서를 구한다.
이제 너의 지저귐을 듣고,
너의 비상을 보고,
너가 싼 똥이나 떨어떠린 털을 보고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너도 늙은 내 마음속에 날아와
어린아이처럼 같이
놀자구나!
2018. 10. 16. 아침
# 아침에 쭉정이가 된 들깨 수확을 하여 신문지에 싸두었네요.
욕심은 들깨씨 몇알
이라도 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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