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어물전 망신은 꼴두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못생겼다고 모과로 이름지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과는 내게 정다운 과일 이름입니다.
어릴 때 우리 시골 앞집에 집안 눗님이 살았는데 못생겼다고 모두 모개(모과의 방언)로 불렀고,
통칭 그 집은 모개집, 모개 아버지, 모개 동생 등으로 통했지요.
모개 눗님은 초등학교 마치고 일찍 대구로 가서 미장 기술을 배워 미장원을 했고,
내가 대학 다니면서 미장원에 들려보니, 눗님은 노랗게 잘 익은 모과같이 아름다웠습니다.
우리 시골집에도 오래된 모과나무가 2나무 있었는데
1나무는 집안 뒤안에 있었고, 다른 1나무는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밭에 있었으며,
맛은 서로 달랐지요.
집 모과는 익어도 색깔이 곱지 않았고, 떫은 맛도 많이 있었으나
밭에 있는 모과는 색깔이 곱고 맛도 향기롭고 진했지요.
가을이면 수백개 모과를 수확하여 콩타작하고 남은 꽁깍지속에 넣어 보관을 했지요.
겨울이면 감기걸린 동리 사람들이 집에 오면 모과를 나눠주곤 했지요.
내가 공부한다고 객지를 나돌아 다니다가 집에 와 보니 집에 있는 모과나무가 없어져
아버지께 물어보니 팔아 먹었다고 했지요.
당시 도시에 돈 많은 분들이 정원에 심는다고 팔라고 해서 팔았다고 했지요.
그 후 밭에 있는 모과나무도 같은 신세가 되었지요.
하지만 어디를 가도 모과에 대한 추억과 정이 있습니다.
지난 가을에 대학동기들 부부동반하여 전주한옥마을에 머물때 입구 도로 주변에 모과나무가 있어
그 아래를 살피니 마침 떨어진 모과 1개가 있어 주워 왔지요.
또 가끔 가는 월드컵 공원에도 모과나무가 있어 그 아래를 살피다가
모과 1개가 떨어져 있어 주워 왔지요.
얼마전에 국회 의원회관에 갔다가 행사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앞에 모과 나무가 2그루 있고 추운 겨울임에도 노란 모과가 달려 있어 보기 좋았지요.
혹시나 떨어진 모과가 없나 싶어 살펴보니 마침 크다란 모과가 하나 떨어져 있어 슬쩍 주어왔지요.
이 모과는 언 부분이 많고 사람 발에 많이 차녔는지 상처도 많고 곳곳에 돌이나 모래가 박혀 있었지요.
하지만 향이 지극히 좋아 옛날 우리밭 모과를 만난것 처럼 기뻤어요.
모과 덕에 요사이는 사무실이 그윽한 모과 향기로 가득합니다.
왜 사람들은 모과를 못생김의 대명사로 불렀을까요.
곰곰히 생각도 해 보지만 내가 만난 모과는 사람도 과일도 다 정답고 향기로웠어요.
조금 찜찜한 것은 떨어진 모과를 주워 온 것이 법적으로 절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절도로 걸려 들면 토픽감이 되니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대학시절 밤 12시가 넘어 대학 본관 총장실 앞 단감나무에 올라가 단감 따다가
학교 수위와 잠복 형사에게 발각되어 도망가다가 넘어지고 체포과정에서 상처가 생겼고,
이들에 풀려나와 하숙집에 도착하니 이미 소문을 들은 동료들이 나를 마치 애국열사로 치켜세우고,
후배 여학생으로부터 밤새도록 간호받은 기억도 납니다.
의적도 아닌데 참 창피했지요.
2022.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