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번뇌(煩惱)

하일도 2024. 5. 9. 11:41

번뇌(煩惱)

살아가면서 번뇌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분별(선택)을 할 수 있는 의식이 있다면 번뇌에 빠진다.
불가에서 말하는 가장 큰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제쳐놓고라도
일상에 부딪히는 무수한 번뇌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108번뇌라는 말도 한다.
한마디로 번뇌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표가 된다.
나도 요사이 번뇌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50여개 화분에 식물의 씨앗을 뿌릴 때 이것저것 섞어 심는 것은
보다 많이 수확하기 위한 탐욕에서 출발한다.
각종 씨앗 하나가 화분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크지만
나머지 수많은 작물은 주작물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이것이 내 몫이다.
물론 먼저 자란 배추나 무는 일찍 수확한다.
오래 두면 나비가 날아와 알을 낳아 벌레가 되면 잎을 먹어 치우기도 하고,
시간이 갈 수록 진디물이 번창하여 잘 자라지도 않는다.
그 후 상치와 들깨, 고추, 호박, 시금치, 쑥갓, 방아, 고수, 케일, 비트 등이 그 공간을 차지하며
하루가 다르게 올라와 화분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아침마다 일어나 이들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고민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해야 한다.
물론 솎은 것은 봄나물 채소로 잘 먹고 있으나 다 처리하기 어렵다.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지금은 살이 너무 쪄서 고민이다.
가끔은 비둘기나 까치가 와서 화분을 아작을 내기도 하고,
각종 식물을 뜯어 먹고 흙을 파 해쳐 놓을 것을 보고 분노와 근심에 빠지기도 한다.
이들의 눈과 코는 정말 비상하다.
화분에 남아있는 굼뱅이를 잡아먹기 위하여 흙을 파 해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공간이 있는 화분 한쪽에 6월 콩을 심었더니 귀신같이 알고 이를 파 먹는다.
지금 화분에는 주작물로 고추, 대추 도마토, 호박이 있고 부작물로 상치 4-5포기, 들깨 3-4포기,
시금치, 쑥갓, 케일, 비트 등이 있다.
부작물은 시간이 가면서 하나씩 수확해 나간다.
아침 5시 넘어 일어나 8시까지 온갖 번뇌 잊고 새로운 번뇌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다.
근로자의 날에는 퇴근하면서 홍대 앞 커피집 길에 커피 찌꺼기 5푸대가 있어 작물 거름으로 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집으로 가서 집사람 시장 자전거 타고 와서 장바구니에 20킬로그람 되는 한푸대를 실으니
1.2킬로미터 되는 집까지 가져가기 쉽지 않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4층까지 걸어서 안고 옮기다 보니 힘이 든다.
저녁 먹고 욕심이 생겨 자전거 타고 한 포대 더 가지고 왔다.
다음 날은 몸에 멍이 든 것처럼 아프다.
이같은 노력으로 우리 집 식물들은 사람들이 즐기는 커피를 먹고 자라 맛이 좋다.
오늘 아침 집사람이 테라스에서 식물에 빠져 있는 나를 보고 상치 수확하면 이웃 사람 주겠다고 하여
상치 80장을 수돗물에 4번씩 깨끗이 씻어 주었다.
이번 일요일에는 근처에 사는 대학 동기 부부와 안산에 가서 찰밥과 상치쌈을 먹기로 했다.
동기 사모께서 상치는 물론이고 고수 나물도 좋아해서 올해도 고수 나물까지 준비하려고 한다.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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