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어떤 이는 행복은 기쁨의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라고 한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
행복은 큰 거 한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하기 때문에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행복은 becoming이 아니라 being이다.
칼 헤르만 부세는 이렇게 노래한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아, 남들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요사이 나는 보통 새벽 4-5시에 잠이 깬다.
화분에 자라는 식물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매일 식물을 보고 가꾸는 것이 큰 기다림으로 다가온다.
아침마다 100-200장 따던 상치는 오늘 아침에 50장밖에 못 땄다,
우리 부부가 먹을 수 있는 상치는 하루 20-50장이다.
나머지는 아내가 이웃에 나눠 준다.
난 생각이 복잡하여 이런 물건을 남에게 줄지를 모르는 데 아내는 잘 준다.
아내가 아니라면 매일 아침에 수확하는 상치를 무슨 재미로 따겠나?
아내가 참 고맙다.
무와 배추는 이미 다 수확하고 씨를 받기 위하여 몇 포기만 키운다.
고수도 잘 자라고 일찍 자란 것은 꽃이 핀다.
고수꽃에 진디물이 낀다. 이를 터뜨리면 방금 손가락에 노란 물이 든다.
요사이 들깨 잎을 하루에 70-80장 수확한다.
갈수록 양이 많을 것 같다.
고추도 꽃이 피고 아주까리도 더 넓은 잎으로 자란다.
대추 토마토도 많이 달리고, 호박도 열려 커 간다.
진디물이 끼니 무당벌레가 나타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든 사마귀 새끼도 보인다.
다만 식물 하나하나가 화분 하나를 차지해도 부족한데 화분 하나에
여러 종류의 식물을 키우니 이게 고민이고 번뇌다.
현재 170포기 되는 상치도 씨받을 것 몇 포기를 제외하고 주작물을 위하여 희생해야 한다.
들깨도 현재 130포기 되는데 20-30포기를 제외하고 제거해야 한다.
아침 마다 문을 열고 새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식물에 빠져 2-3시간을 보낸다.
이게 행복이다
내가 요사이 느끼는 행복은 설레임속에 기다리고 서로 마주하여 교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아닌가 한다.
하기사 행복에 이런 복잡한 표현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2024.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