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하일도 2019. 12. 31. 11:38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연말들어 부고장이 하루 걸러 날아오네요.

살만큼 살다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죽음이 오히려 축복으로 여겨지나,

 아직 갈 때가 되지 않은 분들이 가니 안타갑습니다.

그래서 잠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자신과 대화를 해 보고자 합니다.


삶과 죽음은 서로 의지해 있는 것이 아닌가요?
죽음이 없으면 삶도  의미가 없고, 삶이 없으면 죽음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지요.
태어나서 죽지않는 사람이 없고, 우리는 살면서 죽음은 늘 보고 경험하지요.
그 만큼 죽음은 우리 삶에 친숙한 한 부분이라고 봐요.

과거 삼국지를 읽다 보면 시사여귀(視死如歸)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그 책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이해되었으나,

지금은 죽음을 당연히,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는 마음으로 이해됩니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죽음을 맞이 하니 두렵거나 피할 이유가 없겠지요.

제가 과거 인문톡 모임에서 列자(열자)의 말을 언급하면서 삶과 죽음은 축복이다고 했지요.
可以生而生(가이생이생),  天福也(천복야).
可以生而不生(기이생이불생), 天罰也(천벌야.
可以死而死(가이사이사), 天福也(천복야).
可以死而不死(가이사이불사), 天罰也(천벌야).


뜻인 즉, 사람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복이요.
살아야 함에도 살지 않는 것은 하늘의 벌이다.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은 하늘의 복이요.
죽야야 할 때 죽지 않는 것은 하늘의 벌이다.


제 아버님을 하늘 나라로 보내고 슬픔에 잠겼을 때 열자가 한 위 말이 떠올라 당장 "고아가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망부가(忘父歌)을 쓰며 열자의 위 글을 인용하였지요.

제 고향 후배 강민구 원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은 어린 시절에 아버님을 여의고 엄격한 조부모님과 헌신적인 어머님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지요.
조부님은 마루에서 반듯이 앉아 낮 잠을 자듯이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모님은 가족들에게 일체의 哭(곡)을 못하게 하고,

 소복(素服, 흰옷)을 입고 춤을 추셨다고 합니다.
인생을 달관한 분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거나  죽음뒤로  도망가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축복으로 맞이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과 죽음의 천도(天道)가 아닌가 합니다.

2019. 12. 29. 이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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