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과 나팔
내가 잘 아는 고향선배는 7십대 중반이 넘었는데 색소폰을 잘 분다.
인생 후반들어 결혼식이나 어떤 행사에 가서도 색소폰 연주를 한다.
그분은 시골에서 학교다니며 밴드반에서 나팔을 불었고,
씨름반에서 씨름선수를 할 정도로 체격이 건장하다.
서울에 와서 주점도 했고, 우리가 찾아가면 우리나라 색소폰 1세대 이봉조 선생의 수제자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한번은 서울 강남에서 시의원으로 당선된 무용담을 이야기하면서
미국 클린턴이 나발 잘 불어 대통령 당선되었는데, 나도 대통령에 도전해봐?하면서
주위 사람을 웃기기도 한다.
선거는 선거운동원, 특히 아줌마가 중요한데, 이들에게 나발 불어주면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한다.
그 선배는 항상 나팔이라고 하지 않고 나발이라고 한다.
나는 나발은 나팔의 비속어 정도로 알고 있어
그 선배가 자신을 낮추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얼마전에 고향 시장당선 축하모임에 가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래서 제가 선배님, 오늘 축하 나발 불어야지요, 하니 안그래도 불려고 나발가져왔다고 했다.
근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한 선배분이,
야 이 변호사, 아무리 그래도 7년선배에게 나발이 뭐냐,
나팔이라고 해야지 하면서 나를 나무란다.
나발은 선배와 저 사이에 오래동인 격이 없이 통하는 말인데, 내가 너무 경솔했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좀 언잖해 지자 선배가 분위기를 돌리려고 한 말인자 몰라도 갑자기
나팔과 나발의 차이점이 뭐냐고 물어본다.
그 선배가 하는 말이 웃긴다.
나팔은 나라를 팔아 먹는 놈이고, 나발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분이라면서,
그런 이유로 자신은 나팔보다 나발을 좋아한다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한자(漢字)는 喇叭로 같다.
근데 나발은 놋쇠로 만든 것이고 나팔은 금속으로 만든 것이다고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비속어를 쓸 때 나팔보다 나발이라는 말을 쓴다.
개나발, ㅈ나발 등.
紫虛元君誠諭心文(자허원군성유심문)에 德生於卑退(덕생어비퇴)라는 말이 있다.
덕은 스스로를 낮추고 양보하는 데서 생긴다.
그래서 내가 허점이 많은 그 선배를 좋아하나 보다.
2022. 8.1. 이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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