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집 능소화(凌霄花)

하일도 2024. 6. 27. 16:14

우리 집 능소화(凌霄花)

 

내가 사는 빌라(9세대) 출입문 입구에 능소화가 향나무를 걸터타고 잘 피어 있다.

33년 전 내가 이 빌라로 올 때만 해도 능소화 덩굴이 빌라 벽을 타고

올라가게 되어있었다.

몇 해가 지나자 능소화 줄기가 굵어지고 많은 가지가 뻗어 빌라 한 면을 덮으며

3층 빌라 지붕 위로 올라갔다.

인근에서 자랑할 만한 명소가 되었으나 능소화가 빌라 벽과 지붕을 훼손할까

걱정이 되어 능소화 줄기와 가지를 대부분 잘라내고 한 줄기만 살려 향나무를

타고 올라가게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능소화는 덩굴나무로 위를 보고 물체를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줄기를 지탱해 주는

벽이나 나무가 없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반면 타고 올라갈 지지대만 있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한자 말로 凌霄花로 이름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凌(능)은 보통 2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능멸하다는 뜻으로, 다른 하나는 능가하거나 타고 오른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霄)는 하늘이다.

그렇다면 하늘을 능멸할 정도로 높게 자란다는 뜻으로 보면

오만이나 거만함이 숨어 있다.

더구나 그를 지지하는 벽이나 나무를 딛고 올라서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여

희생하는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반대로 하늘 높이 자라는 식물이라고 보면 어쩌면 평범함을 벗어나 고고한 뜻을

지녔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 벽을 타고 지붕까지 정신없이 올라가는 능소화는 하늘을 능멸할 정도로

오만함이 가득했다면 향나무에 기대어 조화롭게 자라는 지금의 능소화는

어쩌면 고고한 선비의 기품을 주는 듯하다.

옛 선비들은 능소화가 질 때 송이째 품위 있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양반꽃'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하며,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에 꽂아주는 어사화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은 명예와 영광인가 보다.

또, 그리움, 기다림이라는 꽃말도 있다.

이것은 능소화에 관한 전설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임금에 총애를 받은 한 궁녀가 모함에 몰려 궁에서 쫓겨나고...

임금이 찾기만 기다리다 죽게 되어 그 혼이 모여 능소화가 되고...

임금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하늘 높이 올라가 피는 나무...

얼마나 그리움이 사무쳤으면 죽어서도 임금이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꽃말이 되었을까.

능소화를 볼 때면 가끔 능소화가 하늘까지 타고 자랄 수 있도록 큰 나무나 벽을

만들어 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왕에게 나에게 긴 지렛대와 받침대를 준다면

지구도 들어 올리겠다는 말이 떠오른다.

집에서 매일 걸어서 나가기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품격있는 능소화를 본다.

어제는 야외에 나갈 기회가 생겼는데 그곳에서도 제법 품격있는 능소화가 피어 있다.

2024. 6. 25.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집 황촉규 1호 경비대장 당랑(螳螂)  (0) 2024.07.05
일찍 하늘을 연 황촉규  (0) 2024.07.02
우리집 봉선화(鳳仙花)  (1) 2024.06.19
꽃과 벌  (1) 2024.06.03
행복이란  (1) 2024.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