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바가지

하일도 2024. 8. 30. 15:31

3바가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땀흘려 일한 결과 붉은 고추 등

3바가지 수확했다.

봄에는 식물들이 잘 자라 보통 2바가지 수확하는데 여름 폭염속에서

아무리 물을 주어도 식물들이 지치고 시들어 성장을 멈추고 잘 자라지 않아

수확이 뜸하다.

그늘 한점 없는 남향 베란다 화분에서 자란 식물들이야 그 고통이 오죽했겠나.

엊그제 처서지나니 아침저녁으로 다소 서늘해진 기분이다.

수확한 것은 봄에 달린 붉은 고추 끝물 한바가지, 들깨잎 한바가지,

그리고 고추잎 한바가지다.

고추는 요사이 새순이 돋고 꽃을 많이 피운다.

들깨는 조금 있으면 꽃을 피우므로 잎으로서는 효용이 없다.

고추잎은 새로 맺은 고추가 붉게 물들고 약이 오를 때까지 가끔 수확한다.

데쳐 먹으면 밑반찬으로 제격이고 몸에도 좋다고 한다.

날씨가 서늘해 지면 호박도 꽃이 피고 열릴 것이다.

폭염속에서도 닥풀꽃은 거의 하루를 걸러지 않고 한뼘 가량되는 큰 꽃을 피운다.

이같은 행진은 보통 10월 말까지 이어진다.

 

내가 사용하는 바가지는 박을 탄 것이 아니고 플라스틱 바가지다.

식물을 수확할 때 나는 노란색과 초록색 바가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아내는 바가지에 야채 등 식물을 담는 것을 싫어한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울밑에 박을 심고 그 덩굴이 초가집 위로 올라가

달덩어리 같은 큰 박이 가을 내내 초가집을 빛나게 한다.

가을 서리가 내리고 잎과 줄기가 시들면 박을 따고 줄기를 걷어 낸다.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한 박을 톱으로 켜서 속을 파내고 삶는다.

삶은 박을 꺼내어 겉껍질을 제거하여 말리면 1년 내내 사용할 바가지가 완성된다.

제대로 익지 못한 박은 비틀어지고 구멍이 나서 바가지로 사용할 수 없다.

 

과거 우리 시골 마을에는 마을 앞 논 한가운데 공동 우물물(샘)이 있었다.

개인 집에 샘을 파 보았으나 물이 잘 나지 않고 억세고 맛이 없다.

샘은 마을로부터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수백미터 떨어진 집도

물지게를 지고 샘을 이용했다.

물지개에 달고온 물통에 물을 퍼담을 때도 항상 바가지를 사용했다.

어린 우리도 이 샘에서 물지게를 지고 물을 퍼날라 큰 독에 물을 채웠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사용해도 물이 펑펑 솟아나는 샘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기술이 발달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니 집집마다 펌퍼로 잦는 샘이 생기고,

반대로 사용이 뜸한 공동 샘은 방기되고 우물속에 잡초가 나고 고기가 놀고

물도 잘 나지 않는다.

 

30여년 전에 이 빌라에 이사를 왔을 때 화단에 박을 키우고 싶었다.

큰 박은 필요 없어 조롱박 씨를 구하여 여러해 키우면서 조롱바가지를 만들어

물을 받아 먹었다.

우리집 어딘가에 아직도 조롱바가지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서재에서 가끔 기록을 정리할 때 핀이나 막도장 등이 나오면

조롱 바가지에 넣는다.

202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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