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상생(相生)

하일도 2024. 9. 13. 15:44

상생(相生)

 

삶은 투쟁이라는 말이 있다(leben ist kamfp).

물론 투쟁 자체가 자신과의 싸움에 머물 수도 있겠으나 상대와의 투쟁으로

나아간다면 온갖 복잡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생존하는 만물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蝸牛角上之爭(와우각상지쟁)이라는 말도 있다.

사람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모습이 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아웅다웅 다투는 모습 같다고.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더듬이같이 좁은 공간에서 왜 다투냐?

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부싯돌 번쩍하는 순간에 내맡겨진 이 내 몸

隨富隨貧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즐기세나

不開口笑是痴人 (불개구소시치인)

입을 열고 웃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아

 

이 같은 투쟁은 비단 나라, 이념, 인종, 종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집 베란다 작은 화분에서도 일어난다.

화분 하나에 여러 종류의 식물의 씨앗을 심는 것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식물들이 커가면서 나의 번뇌는 점점 깊어만 간다.

화분 하나에 여러 종류의 주작물과 부작물을 심었으나 공생하는 것도 있고,

상극인 작물도 있다.

고추와 들깨는 그런대로 공생한다.

그러나 호박, 토마토, 수세미, 닥풀꽃은 고추나 다른 작물들과

공생하기 힘드나 보다.

이들은 수 많은 잔뿌리들을 두어 물과 양분을 독점한다.

다른 작물들이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처음에 다른 작물들과 공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화분 하나 하나에

닥풀꽃 17나무를 키웠다.

그런데 같이 자라는 고추가 최근 시들어 간다.

그래서 고추 4 나무를 없애고 닥풀꽃 4 나무도 없앴다.

그 공간에 가을 무, 배추 등 각종 씨앗을 심었다.

전번 비 올 때 심은 채소는 싹이 잘 올라온다.

어쩌면 이것도 주물주가 내게 준 선물이다.

봄에 고추를 심은 화분 모퉁이에 나팔꽃 비슷한 싹이 올라온다.

심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이런 싹이 올라오나 궁금하기도 했으나

그대로 두었다.

근데 이것이 커가면서 수많은 가지를 벌여 고추나무, 방아나무, 닥풀꽃나무,

아주까리나무를 타고 올라가 이들을 괴롭힌다.

지금 작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능조라는 둥근잎유홍초다.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 스토리가 생겼는지 알 수 없다.

도라지(3)나 참두릅(2)도 씨앗을 뿌리거나 심은 적도 없는데

싹이 나서 잘 자란다.

얼마 전에는 암사마귀가 교배중에 숫사마귀를 머리부터 몸통까지 잡아먹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

배부른 암사마귀는 지금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곤충 사냥을 하고 있다.

자연에도 사람들이 배워야 할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

이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 하루하루 큰 행복이다.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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