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귀한 손님(貧客)

하일도 2024. 10. 14. 15:52

귀한 손님(賓客)

 

오늘은 10월의 어느 멋진날에 나올 법도한 578돌을 맞는 뜻깊은 한글날이다.

아니, 나에게는 큰 손님을 맞는 날이기도하다.

결혼을 하겠다는 딸의 선언을 듣고 한편으로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 30대 중반까지 딸과 아버지로서 지낸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결혼식날 주례는 없으니 나보고 축사를 해달라고 한다.

이말을 할까, 아니 저말이 좋지 않을까 하면서 지었다 채웠다 하기를 반복한다.

이런 말을 하면 꼰대소리 들을까 두렵고, 재밋는 말을 하면

가벼운 부모로 비춰질까 두렵다.

허용된 시간은 5분이란다.

가끔 주례가 되어 주례사를 할 경우 7~10분 이내로 해 왔다.

지었다 채웠다 하는 시간도 다 가고 오늘이 바로 10월의 가장 멋진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까치가 운다.

옛부터 까치가 울면 집안에 손님이 온다고 한다.

4층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니 우리 빌라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피뢰침 꼭대기에

까치가 날개를 치면서 노래를 한다.

참 고맙다.

저런 미물도 내 딸 결혼식을 알고 아침부터 축하 노래를 하는구나!

해가 뜨기전에 태극기를 뒤 베란다에 내 달았다.

베란다 화분에는 올 마지막을 장식할 닥풀꽃이 피어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개짓하며 춤을 춘다.

하객은 당사자의 뜻에 따라 가족, 신랑신부 지인들로 한정했다.

알릴 게 없어서 좋았으나 한편으로 이를 알게 될 지인들의 한마디가 부담스럽다.

딸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행진을 할 때 자꾸 웃으라고 한다.

딸은 시종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웃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아마 내가 결혼할 때인 1980년 상황이 옹이진 한이 되어 비춰진 것이 아닐까?

수년전 대구 갓바위를 오를 때도 그랬다.

축사 마지막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낭송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덤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인연을 맺은, 앞으로 인연을 맺을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202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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